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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별로 하루를 살아본 기록

by milkytori 2025. 4. 21.

    [ 목차 ]

색깔별로 하루를 살아본 기록
색깔별로 하루를 살아본 기록

봄이 오니 감정이 이리저리 변화가 많이 된다. 그래서 빨간 날, 파란 날, 회색 날, 감정의 색으로 나를 이해하는 3일간의 실험해 보기로 하였다!

🔴 빨간 날 – 에너지가 과열된 하루의 기록

빨간색은 내게 늘 강렬한 에너지의 색이었다. 열정, 분노, 흥분, 혹은 그 모든 감정이 얽혀있는 다층적인 감정의 상징. 그래서 '빨간 날'을 살기로 한 날, 나는 가장 먼저 내 하루의 템포를 평소보다 빠르게 맞췄다. 알람도 강렬한 락 음악으로 바꿨고, 커피는 진한 에스프레소로 시작했다. 모든 선택이 빨갛게, 뜨겁게, 즉흥적으로 흐르길 바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일부러 신나는 노래를 들었다. 주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애썼고, 그 낯선 시선 속에서 이상하게도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점심은 평소에 잘 안 먹던 매운 음식으로, 대화도 의식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요즘 뭐 재밌는 거 없어요?”라는 질문 하나에도 온몸으로 대화에 뛰어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데, 오후쯤 되니 이상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빨간 감정은 뜨겁지만, 오래 유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조금만 말투가 까칠하게 느껴져도 기분이 금세 상했고, 업무 중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쉽게 예민해졌다. 마치 기름에 불붙듯 반응하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조금 무서웠다.

퇴근 후에도 빨간 감정의 기세를 유지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고요한 음악이 그리워졌다. 빨간 날은 확실히 자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그만큼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심했고, 나 자신조차 컨트롤이 어려운 느낌이었다. 강렬한 감정의 힘을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에너지에 휘둘릴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깨달았다. 빨간 날은 나를 뜨겁게 만들었지만, 그 열기를 안고 잠드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 파란 날 – 차분하게, 감정의 물결 따라 흐르기

파란색은 내게 평온함과 정리를 상징하는 색이다. 그래서 '파란 날'은 의도적으로 차분하게 하루를 살아보는 날로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요가 앱을 켜고 1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차분한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배경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날은 약속도 일부러 비워두고, 내 감정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며 보내기로 했다. 점심시간엔 책을 한 권 들고 조용한 카페에 들어갔다. 평소 같았으면 휴대폰으로 뉴스를 뒤적이거나 메신저를 확인했겠지만, 이 날은 일부러 디지털을 멀리하고 활자를 천천히 음미했다.

파란 날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의 느려짐’이었다. 평소보다 반 박자 느린 대화, 천천히 걸음, 계획 없이 흘러가는 시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느림이 나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줬다. 바쁘게 살아가면서는 놓쳤던 작은 감정들—불안, 안도, 서운함 같은—이 하나둘씩 얼굴을 드러냈다.

오후에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다. 하늘도 파랬다. 그 하늘 아래서 나는 온전히 ‘멈춰 있는 나’를 느꼈다. 불안도 잠잠해졌고, 조급함도 사라졌다. 나의 리듬이 세상의 속도와 맞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된 하루였다.

파란 날은 마치 마음을 정화해주는 필터처럼 작용했다. 자극 없이도 충분히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파란 날을 보내고 나니, 마음의 그릇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느끼는 연습, 그게 바로 이 하루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 회색 날 – 무채색 감정과 나란히 걷기

회색은 종종 무기력함이나 정체된 기분을 상징하지만, 나에게는 묘한 편안함이 있는 색이다. 뭔가 확신하지 않아도 괜찮고, 뚜렷한 감정 없이도 괜찮은 그런 상태. 그래서 회색 날은 ‘애매함’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보는 날로 정했다. 오늘은 특별한 목적도, 계획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다.

아침에도 일부러 알람을 맞추지 않았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냉장고에 뭐가 있나 열어보며 아무 재료나 꺼내 간단하게 식사를 준비했다. 이 날의 키워드는 “대충 괜찮게”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하루로 꼭 포장하지 않아도, 그냥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연습.

SNS도 안 보고,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한 즐거움을 찾지도 않았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회색 날은 어떤 면에서는 허무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해방감이 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하루.

문득, 내가 평소에 얼마나 강박적으로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았는지 실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회색 날은 불분명하고 모호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오히려 가장 솔직하고 원초적인 나의 모습 같았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 흐릿한 기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회색 날이 준 배움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하루가 오히려 회복에 가장 가까운 날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마치며: 감정의 팔레트로 하루를 물들이는 실험
이 세 가지 색의 하루를 살아보면서 나는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뚜렷해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때론 강렬함이 필요하고, 때론 잔잔함이, 때론 모호함이 나를 감싸줘야 할 때도 있다. 이 실험은 단순히 기분을 따라 색을 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감정과 함께 걷고,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늘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빨갛고, 어떤 날은 파랗고, 또 어떤 날은 회색이다. 그걸 억지로 바꾸기보다, 그 색을 인식하고, 함께 살아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마음 챙김’이 아닐까. 당신의 오늘은 무슨 색인가요?